서 울 놈

2004년 2월 16일

대문과 중문사이는 항상 어두워서 오래 있고 싶지가 않았다. 어두움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골목길을 들어서서 끝까지 와서 오른쪽이 우리 집 대문이었다.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바닥의 높이가 달랐다. 골목길 바닥 보다 낮은 대문 안은 들어설 때 잠시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동쪽을 향한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이 행랑 방이고 다음이 중문, 중문 맞은 쪽의 문은 사랑채로 통하는 문이었다. 그러니 대문 안은 대문을 닫으면 채광이 되지 않으므로 어두웠었다.

전형적인 서울 사대문안의 한옥으로, 동쪽 대문에 남향인 집으로 안채, 뒤채 및 사랑채로 되어 있었다. 뒤채는 후에 아버님께서 2층으로 증축을 하셨다.

종로 통에 남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서 들어가다 보면, 처음 맞는 것이 가게의 나무판자에 함석을 씌워 만든 빈지 문이었다. 그 문을 두 겹씩 오른쪽 벽에 세워놓았기 때문에 골목이 더욱 좁았다. 신작로에서 집으로 들어가다 보면 가끔 왼쪽 팔에 흙이 묻었다. 이는 왼쪽 벽은 전형적인 한옥 벽으로 먼지까지 끼어 있었고, 골목의 흙바닥이 기와에서 떨어진 낙수 물로 페어 고르지가 안아 발을 잘못 딛어서 몸을 가누지 못해서였다. 그 좁은 골목에서 공도 차고, 야구도 하고 자치기도 했다. 그때에는 골목이 좁은 줄도 몰랐다. 그냥 재미있었다.

전차가 다니는 종로 통에 해가 질 녘이면 내 그림자가 얼마나 긴지, 내 키가 언제나 저만해지나 하고 바라다가, 전차가 오면 뛰기 시작하여 전차와 달리기를 하게되는데 종로 4가 정류장까지 뛰면 내가 앞서게 되어 전차를 이겼다고 좋아했었다. 또 골목에서 자치기를 하다가, 들고 뛰어 전차가 다니는 큰길을 건너가서 던지면 재어 볼 필요도 없이 이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서울의 아스팔트 위를 뛰어다니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시골의 친척이라고는 장호원에 사시는 작은 이모 님 댁뿐이었다. 나중에 6.25때에 서울에 침입한 인민군을 피하여 형님 두 분과 같이 찾아 간 곳이 이모 님 댁이었는데, 처음으로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개구리도 잡아 구어 먹고, 개울에서 목욕도 하고 밤에는 모깃불을 피하여 마당에 나와서 하늘의 별을 보고,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기도 했다.

사실 서울에서만 자란 나는 어린 시절을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서 만 지내다 보니 감정적으로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자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시골 출신의 친구들과 비교해 볼 때 나에게는 이성은 있어도 감성은 아주 적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성을 늘리려고, 세계 곳곳을 방랑자 모양으로 떠돌아다니는 모양이다.

[글 목차]  [이전 봉사하는 학생들]  [첫글 담배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