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1955-1959

 

  서울공대 1학년 때에는 교양과정이라서 각 학과의 신입생들이 학과에 관계 없이 반을 구성하였는데,나는 1학년 8반에 편성이 되어 각 학과 및 각 고등학교 출신들과 같이 1년을 지내게 되었다.

  같은 반 친구 중 남자 고등학교를 나온 어느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에 여학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내가 남녀공학인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헉교를 나온 것을 부러워 하였던 기억이 난다. 같은 반 친구들이다.

 

 

 

  넷째아우 천강의 육군사관하교 입교식 날 찍은 사진이다. 나와 두 살 차이인 아우는 서울 경복고등하교 2학년 때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서울대 약대 출신의 큰 형님, 서울대상대 출신의 작은 형님과 서울대 공대에 다니는 나를 비롯한 형제들은 아우가 서울대 법대를 가기를 은근히 원했는데, 장래의 희망이 육군참모총장인 그는 육군사관하교에 지원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영광의 입학식에 외머할님과 어머님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참석하여 아우의 입학을 축하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타고 오던 버스가 논두렁으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외할머님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천만 다행으로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아우는 1960년 생도대 연대장으로 육군사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 대표화랑으로 육사의 기념탑에 그 이름을 남겼고, 졸업식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 후 휴전선의 초소장으로 장교 생활을 시작, 육사 교수로 미국 유학, 퍼듀 대학에서 지질공학으로 박사학를 받고, 육사의 유일한 교수장군 자리인 교수부장을 2년 역임 후 전역, 권위 있는 지질공학자로 한양대학교 토목과 교수로 봉직 중이다.

 

대학1년 간을 교양과정으로 보내고 2학년에 올라와서 전공인 건축공학과 동기 40명이 우이동에서 단합대회를 가졌다.

동기 중에는 6.25로 인하여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이 여러분 계셨었는데 항상 조용하신 반면 나와 같이 정상적으로 입학을 한 동기들은 항상 활발하고 진취적이었다.

우이동에서도 우리들은 한 참 신나게 하루를 보냈다. 수영복 차림의 나도 소리를 지르고 있다.

 

 

 

건축공학과에서는 건축에 관한 과목뿐만 아니라 미술에 관한 과목도 있었는데, 그 중의 한 과목인 조소시간에 진흙으로 여인 두상을 만들고 있다.

 조소과목은 당시 유명한 조각가이신 서울대학교미술대학의 김세중 교수님께서 담당하셨는데, 그 교수님께서는 혜화동 성당의 부조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기셨다. 조소과목의 학점은 A를 받았다.

 

 부모님 내외분이 같이 찍으신 사진이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막내 아우가 귀국하여 자기가 미국에서 부모님 생각이 날 때마다 지갑에서 꺼내서 보았다는 코팅한 사진을 보여 주기에 당장 스캔하여 보관하고 홈에 올리게 되었다.

 사진은 아버님께서 1956년 서울 종로 4가 집의 건너방에서, 어머님께서는 건너방 툇마루에 앉아 찍으신 것이다.

 당시에는 아버님께서 덕성여대에서 동양 미술사를 강의 하셨다.

 

  1957년 8월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막판에 고등학교 동기생등 9명이 1주일간 만리포 해변으로 캠핑을 갔다.미군용 A텐트 3개, 냄비, 솟, 식기등 취사도구 및 쌀, 반찬, 간식등을 준비하여 서울역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버스로 갈아타고 태안까지 가서, 만리포행 버스를 갈아 타기 직전  서울서 준비한 취사도구를 잃어 버려서 캠핑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날씨는 태풍의 덕으로 가는 날, 오기 전날과 오는 날 3일만 비가 안오고 4일간 비가 내렸다. 취사도구는 마침 한 친구의 이모님이 태안에 살고 계셔서 그 집에서 빌렸다.

만리포에 도착 후 우선 A텐트 하나에 3명이 사용하기로 하고, 각 텐트 별로 취사등을 돌아가며 담당하기로 했는데, 한 텐트에서는 처음부터 게임을 즐기느라고 취사당번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다른 텐트에서 비를 맞으며 식사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에는 캠프 화이어도 피워 한 때나마 모든 인원이 둘러 앉아 노래도 부르고 줄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돌아 오는 날은 모든 짐을 꾸리고 아침 식사를 식당에서 하였는데, 그 동안 신경이 예민하여 에그 후라이 하나로 친구간에 시비가 생겨서 둘이 모래판에서 밥도 안먹고 뒹구는 돌발사건이 생겼다. 이 사건은 친구간에 오랫동안 화제거리가 되었었다. 사진 왼쪽은 태안에서 찍어서 8명인데, 만리포의 해변에서는 한 텐트의 3명이 텐트에서 나오지 않아서 5명이다.

 

 

  대학 4학년인 1958년 가을에 건축과 전원이 경주 및 해인사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입학시에는 40명의 정원이 었는데, 그 당시 학보병 제도가 생겨서 19명이 학보병으로 징집이되어 1년 6개월간 복무하느라, 남은 학생은 20여명밖에 되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때이라 정장차림의 모습이 많은데 유독 나만이 청바지에 잠바와 베레모 차림이다.

 

  

   단기 4292년(서기 1959년) 3월 28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를 제13회로 졸업했다.

졸업을 축하하여 어머님과 대학 4학년 때 고교동기의 사촌동생의 가정교사 노릇을 했는데, 그 학생의 어머님께서 와 주셔서 같이 찍은 사진이다. 당시의 신사복 상의의 단추는 3개였다.

어머님께 학사모를 씌어드리고 사진을 찍었으면 더 좋았을 것인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

 

대학교 졸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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